이소영 작가는 잊혔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을 찾아다닌다. 그녀는 이들을 '아웃사이더 아티스트(outside artist)'라고 부른다. 1945년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는 전통적 문화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예술,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의 예술을 일컫는 단어로 '아르 브뤼(art brut)'라는 말을 썼다. 그 후, 이 단어는 1972년 예술 평론가 로저 카디널에 의해 아웃사이더 아트로 번역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는 다른 뜻을 지니게 되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테이트 미술관은 아웃사이더 아트의 의미를 좀 더 넓게 해석했다. 그러면서 포함시킨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독학'이다.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입니다. 이 책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라는 용어에 어울리는 화가들을 소개합니다. 우체부나 청소부로서 일을 하며 저녁에 집에 돌아와 예술 작업을 한 화가도 있고, 노예로, 또는 정신병원에 있으면서 자신만의 작품활동을 한 화가도 있습니다. 또 '영국 왕립아카데미 회장 토머스 모닝컨의 첫 번째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지녔지만 그게 전부인, 시대적으로 여성이라 주목받지 못했던 그래서 살아생전 단 한 번의 개인전도 열어보지 못한 천재적인 화가에 대한 소개도 있고, 테레진 수용소의 아이들 작품도 있습니다.
책은 4부에 걸쳐 총 23명의 작가를 소개합니다.
1부 내 삶을 바꾼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
경계선과 도전 앙리 루소 / 자유를 그려낸 아이들 수용소의 화가들과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 / 나를 잊지 말아요 실뱅 푸스코 /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알로이즈 코르바스 /마음이 여러개인 남자 아우구스트 나터러 / 청소부, 세상을 창조하다 헨리 다거
2부 독특한, 괴이한, 불가해한, 그래서 매력적인
만날 수 없는 당신에게 조지아나 하우튼 / 얼어붙은 목소리로 그린 이야기 핸드릭 아베르캄프 / 이 글을 쓰기까지 나는 오래 앓았다 리처드 대드 / 우체부가 지은 꿈은 은신처 페르디낭 슈발 / 파울라를 위한 레퀴엠 라울라 모더존베커 / 삶의 슬픔, 찬란하게 세라핀 루이
3부 새로운 '눈'과 '손'이 이끄는 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례식 아나 앙케르 / 나쁜 그림 카임 수틴 /찢기의 생성학 앤 라이언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삶 플로린 미트로이 / 로봇을 만든 형제 요세프 차페크, 카렐 차페크
4부 그리고 그들이 내 곁으로 돌아왔다
하늘의 조각을 주워서 위리엄 에드먼슨 / 거리에서 이뤄진 최선 빌 트레일러 / 파리의 우체부, 화가가 되다 루이 비뱅 / 전쟁이 예술을 만들 때 호레이스 피핀 / 그녀의 이름을 찾아서 위니프레드 나이츠 / 가르시아 스타일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
여러 작가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헨리 다거(Henry Darger 1892~1973)와 페르디낭 슈발(Ferdinand Cheval 1836~1924)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헨리 다거는 미국 시카고에서 청소부 일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아빠에게 버림받았으며 지적 장애가 있어 청소년기를 정신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다리까지 절어 겨우 청소부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헨리 다거는 사진작가 네이선 러너 (Nathan Lerner)의 집에 세들어 살았습니다. 1973년 헨리 다거가 죽자 집주인은 그의 집을 정리하러 들어갔다 깜짝 놀랍니다. 헨리 다거의 방에는 그의 평생의 창작품이 가득했던 겁니다. 이에 감동한 네이선 러너는 그의 작품과 방을 그대로 보존하고 이를 세상에 알립니다.
헨리 다거는 잡지나 신문 속 인물들을 먹지와 트레이싱 페이퍼를 대고 그리거나 콜라주를 해서 재창조했습니다. 그의 그림 속 어른의 존재는 어린이들을 무자비하게 괴롭히는 폭력적인 이미지로 주로 표현되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어른에게 대항하며 자신들만의 능력을 표현하는 어린이들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자신의 처지와 바람 등을 그림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죽는 날까지 <비현실의 왕국에서>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가상의 행성을 배경으로 한 전쟁 서사인 이 시리즈는 총 15,145면이나 된다고 하는데요, 단생본으로 하면 200권이 넘는 분량으로 현존하는 가장 긴 판타지 소설입니다. 내용은 로버트 비비안 가의 일곱 딸인 '비비안 걸스'가 남성 어른들로 상징되는 '악'과 맞서 싸우는 스토리입니다. 역시나 작품 속 어린이들은 잔인하고 노골적인 폭력의 희생양임과 동시에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그림과 소설 속 어른들은 모두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표현된 것을 보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어른이 어떤 존재였는지, 또 그런 결핍 속에서 자라 힘겹게 청소부일을 하면서도 홀로 외로이 쉬지 않고 창작 활동을 한 헨리 다거가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흔히 어린 시절의 결핍이나 트라우마는 성장기를 지나면서 부정적으로 각인되어 막살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헨리 다거는 끈기와 집념으로 전업 작가도 쓰기 힘든 200권가량의 소설을 써내고 또 많은 그림들을 남김으로써 그의 인생을 가치 있고 보람 있게 만들었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끈기와 집념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다음으로 소개할 작가는 페르디낭 슈발입니다.
페르디낭 슈발은 프랑스 오트리브라는 마을에서 33년간 우체부일을 했습니다. 슈발은 원래 제빵사가 꿈이었으나 큰아들의 사망으로 멀어졌고, 그 다음 꿈인 농부는 가난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결국 우체부가 된 슈발은 걸어서 편지를 배달했기에 그는 하루 평균 삼십 킬로미터를 걸었지만, 그 시간이 그에게는 업무를 하며 동시에 산책과 공상을 즐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소영 작가는 상상과 공상의 의미를 구분하며 슈발이 공상을 즐겼다는 점에 끌렸다는데... 상상과 공상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니 슈발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더 들더라고요. 공상은 현실적이지 못한 것을 막연히 그려보는 것이고, 상상은 경험하지 않은 것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 즉 공상이 좀 더 허무맹랑하다는 것이죠. 슈발이 바로 이런 공상을 즐겼다니... 어떤 공상을 즐겼을까...? 궁금하지요?ㅋㅋㅋ
당시 프랑스인들은 새로운 나라나 식민지로 여행을 많이 했고 그래서 많은 엽서나 책들이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이런 이국적 풍경에 매료된 슈발은 머리 속으로 자신만의 '꿈의 궁전'을 그리며 즐거운 공상에 빠졌습니다. 슈발은 머릿속 꿈의 궁전을 직접 드로잉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그린 꿈의 궁전을 현실로 옮기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어느날 배달 중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그는 그 돌을 보며 '자연의 재료를 선물이라 여기고 이 재료로 궁전을 짓자'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일을 마친 후 그는 매일 밤 동네 근처에서 진기한 돌을 구해 집 마당에 모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 마당은 돌들로 가득 찼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밤 시간을 이용해 돌로 된 궁전을 짓는데 몰두했습니다. 어느덧 예순이 되어 우체부 일을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석회와 시멘트를 사서 16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1912년 그의 궁전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꿈을 꾸기 시작한 지 33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정말 dream comes true~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네요. 그 궁전은 길이 26미터, 폭 12~14미터, 높이 10미터의 작은 마을 크기로 슈 혼자만의 힘으로 탄생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그는 다시 8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이 궁전은 그의 나이 88세에 완성되었고 그는 그해 세상을 떠나 그 곳에 부인, 딸과 함께 잠들어있다고 합니다.
진짜 굉장하지 않습니까? 우체부일을 하며 이런 저런 꿈을 꾸고, 그것을 하나하나 이루어낸 멋진 사나이. 중간에 지치고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많았을 텐데 그걸 이겨내고 결실을 일궈낸 슈발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평소 이런 사람들이 참 부럽워요. 편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상황을 탓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우직히 해내는 사람들... 그것도 한 두 해가 아니라 이렇게 긴 세월을 지치지 않고 이뤄내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워요.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지만, 그렇게 추구할 목표가 있다는 건 그만큼 열정이 있다는 것이고 그 열정이 식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끈기가 있고, 결국 그 목표를 해냈다는 것은 충분히 부러워해도 되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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