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웹마스터도구> <구글 서치콘솔> 라울 뒤피, 색채를 만나다!
본문 바로가기

전시

라울 뒤피, 색채를 만나다!

반응형

 
며칠 전 한가람미술관에서 하는 라울 뒤피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라울 뒤피는 ‘색채의 마술사’,’기쁨의 화가’, ‘기쁨을 색채로 표현하는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화가죠. 그런 멋진 색을 표현하는 라울 뒤피의 인생이 궁금해지네요.
 

 
라울 뒤피의 생애
라울 뒤피(Raoul Dufy, 1877 6 3 ~ 1953 3 23) 프랑스 노르망디 아르브에서 태어났습니다. 아홉 자녀 둘째로 태어난 뒤피는 14살이 되던 1891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넉넉치 않은 가정 생활로 그림에 대한 꿈을 잠시 접었습니다.

자화상(1898) 퐁피두 센터

초기와 후기의 자화상입니다.  라울 뒤피는 초상화를 많이 그리지 않은 화가인데요, 두 번째 자화상은 1945 68세의 모습입니다.
 
라울과 음악
라울 뒤피의 아버지는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했고, 라울은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이며 동생은 피아노 연주가입니다. 이렇듯 라울에게는 음악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라울의 작품 중에는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라울 뒤피, 1948, 앙드레말로 현대미술관

간결하면서도 색채가 돋보이는 ‘붉은 바이올린’의 상단에 ‘라울 뒤피의 음악과 그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그가 음악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음악에 대한 애정이 엿보입니다.
 
라울과 인상파
23세인 라울 뒤피는 파리로 국립 미술학교에 들어갑니다. 파리에서 인상파 그림을 접한 라울 뒤피는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당시 라울은 도시 곳곳을 산책하며 관찰한 것들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아래 그림은 인상파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그림이네요.

몽마르트에서 바라본 파리. 출처 : 퐁피두센터

 
 
라울과 야수파
1905 라울은 살롱에서 앙리 마티스의 <사치, 평온, 쾌락>이라는 작품을 보게됩니다.

앙리 마티스. 1904. 사치. 평온, 쾌락.&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출처 : 오르세 미술관

라울은 그림에 매료되어 그림을 보고 나는 그린다고 하는 참다운 의미를 파악할 있었다. 정말 놀라운 발명이라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상주의적인 리얼리즘의 매력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다.”라고 얘기합니다.
야수주의의 영향으로 라울은 <라울 뒤피, 깃발이 있는 거리> 등 관련 주제를 여러 버전으로 그립니다. 이 작품의 색조는 확실히 야수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지는데, 야수주의는 라울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견하기 위한 중간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깃발이 있는 거리. 1906.&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출처 : 퐁피두센터

 
라울과 입체파
라울을 또 폴 세잔에게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형태 기하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새로운 회화적 실험을 시작합니다. 즉 형태를 단순화하고 색상을 부드럽게 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확실히 라울 뒤피의 그림 스타일이 바뀌는 것이 눈에 보이네요. 그러나 라울은 이런 입체파에서도 탈피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이 듬뿍 담긴 일명 '속필'을 구사하면서 삶의 기쁨을 다채롭게 표현하게 됩니다. 선의 자유로움, 본인 툭유의 곡선, 가벼운 스케치가 탄생하게 됩니다.
 

베니스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1938. 에드몽 헨라드 컬렉션

 드디어 라울 특유의 그림이 탄생했네요. 많은 분들도 그러하시겠지만 저는 라울의 스타일 중 이런 풍이 가장 좋습니다. 인상파니 입체파니 하는 것은 과도기적 상태였고, 그런 과정들을 거쳐서 자신 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점이 바로 라울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깃발을 장식한 배들. 1946. 에드몽 헨라드 컬렉션

 
노르망디 항구도시 르 아르브에서 태어난 라울에게 바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소재이지요. 그래서 라울은 바다나 항구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파란 바다와 하늘이 파랑색이나 같은 파랑색이 아닌, 라울 만의 색감 표현이 정말 멋지네요. 
 
라울과 판화
그 후 기욤 아폴리네르의< 동물시집>(오르페우스의 우화집)의 삽화를 목판화로 제작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판화작품을 모트브로한 텍스타일 작업도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라울은 장식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듯합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텍스타일 작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라울과 전기 요정
그래도 라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그의 대표작 <전기요정>입니다. 1937년 극제 예술 및 기술 전시회에서 전기 전시관을 위해 제작한 것으로 전기와 빛의 시대를 맞이하여 과학기술에 바치는 경의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전기가 인류에게 가져온 눈부신 발전에 대한 찬미를 라울 특유의 밝고 화려한 색채 위에 자유로운 선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원래 가로가 60m, 세로가 10m에 달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작품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정전기 현상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부터 20세기 전기의 발전사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제우스, 에디슨·벨·퀴리부인 등 전기와 관련된 신과 인물 등 110여 명이 담긴 이 작품은 만국박람회가 끝난 후 바로 전기공사 창고에 보관됩니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라울 뒤피는 대중을 위해 <전기 요정>을 석판화로 제작합니다.
한가람 미술관에는 판화 작품이 전시 중이고, 더 현대에서는 작가가 직접 과슈로 채색하여 완성된 현존하는 유일한 <전기 요정> 석판화 연작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라울과 검은 화물선

검은 화물선, 1948. 퐁피두 센터

 
마지막으로 라울의 후기 작품에 등장하는 검은 화물선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앞서 화려한 색채가 가득했던 풍경들과 달리 검은색으로 가득한 작품들을 다수 제작합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된 고향 항구를 묘사하기 위해 검정색 단일 색조를 사용한 것입니다. 크리스티앙 브리앙은 “태양을 바라볼 때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순간을 경험하면서 검은색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작가로서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않고 작품에 투사했습니다. 평생 색을 찬미하며 그림을 그려온 라울이 그린 검은 화물선은 화가로서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듯한 여운을 남기네요.